부모 손에, 자식 손에 참혹하게 삶 마감…거듭되는 존속·비속 살해 범죄

부모 손에, 자식 손에 참혹하게 삶 마감…거듭되는 존속·비속 살해 범죄

가정의달 5월은 1년 중 가족간의 사랑을 확인하고 감사를 표현하기 가장 적합한 시기다. 어버이날, 어린이날 부모와 자식간에 서로 선물을 주고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심심치않게 가족 사이가 남보다 못해지고 범죄로까지 이어지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곤 한다. CBS노컷뉴스는 가정의달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반인륜적 범죄의 발생 추이와 원인, 필요한 제도 개선에 대해 분석해봤다.


지난 2021년 8월 대구. 당시 18세였던 형 A군과 두 살 터울의 동생. 할머니 B(77)씨는 형제에게 급식카드로 저녁거리를 사오라는 심부름을 시켰다. 형제는 귀찮다는 이유로 심부름에 응하지 않았고 할머니는 직접 편의점에서 음식을 구매해 집으로 돌아왔다.

마침 커피를 마시고 있던 A군을 본 할머니는 '왜 심부름을 하지 않느냐. 밤 늦에 커피를 왜 마시냐'고 했고, A군은 여기에 격분해 할머니를 살해하기로 마음 먹는다.

온라인에서 살해 방법을 검색하고 직접 흉기를 다듬은 A군은 약 60회 흉기를 휘둘러 잔혹하게 할머니를 살해했다.

동생 B군은 형의 범행 계획을 알고도 말리지 않았고, 범행 당시 소리가 새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창문을 닫으라는 형의 말에 따랐다.

A군은 범행을 목격한 할아버지 B(93)도 살해하려다가 할아버지의 호소와 동생의 만류에 만행을 멈췄다.

평소 형제는 할머니에 대한 불만이 많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게임에 빠져 살던 형제는 '게임을 적게 하라, 친구들과 어울려라,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할머니의 잔소리를 거슬려했다.

기초수급을 받는 어려운 상황임에도 수년간 손주를 키웠던 할머니. 할머니가 남긴 메모에는 형제에 대한 걱정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결국 손주로 인해 세상을 떠났고 할아버지는 간신히 목숨을 지켰지만 충격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됐다.

법원은 A군에게 징역 장기 12년에 단기 7년을, A군의 동생에게는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가정을 파탄으로 내모는 존속살해 범행. 최근 10년동안 부모나 조부모를 살해하는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10년간 존속살해 범죄 발생 건수. 경찰청 제공최근 10년간 존속살해 범죄 발생 건수. 경찰청 제공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14년부터 10년간 전국에서 568건의 존속살해 범행이 발생했다. 이 가운데 실제로 가족이 사망한 경우는 311건. 나머지는 미수에 그쳤다. 보통 해마다 50~60건의 존속살해 범행이 이뤄지고 있는 셈.

전문가들은 가족 구성의 급격한 변화를 원인으로 꼽는다. 가족의 해체, 붕괴가 빨라지면서 그로 인해 갈등이 발생한다는 분석이다.

A군 형제의 경우도 잦은 가족 구성의 변화로 불안정했던 점이 범행에 영향을 미쳤다.

부모의 이혼과 여러차례 양육자가 변경되는 혼란을 겪은 뒤 조부모 2명과 함께 살게 된 형제. 더구나 조부모들은 지체 장애가 있었고 기초수급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어려운 처지였다.

아울러 조부모와의 갈등을 중재할 다른 가족구성원도 부재해 문제는 극단으로 치닫았다.

동국대 곽대경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전통사회, 대가족사회에서는 나이가 많은 어른의 주장과 권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참고 살았는데 지금은 아랫사람도 자기 주장을 다 하는 시대여서 1:1로 대립하게 된다. 특히 다른 사람과 갈등을 겪으면 그 사람을 안 보면 그만이고 피할 수 있는데, 가족은 같이 생활하고 계속 부닥쳐야 해서 오히려 감정적 골이 상당히 깊어지는 경향이 있다"며 "오랫동안 누적되면서 감정의 골이 쌓이기 때문에 한 번 폭발하면 폭발력이 크다"고 설명했다.

출처 픽사베이출처 픽사베이경제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가족간의 갈등도 패륜 범죄로 이어지곤 한다.

지난 2022년 11월, 당시 44세였던 B씨는 대구 동구에 위치한 아버지의 농원에서 아버지를 잔혹하게 살해했다.

B씨는 아버지에게 빌린 1억 3천만원으로 10년간 헬스장을 운영했다. 이후 사업을 접은 뒤 돈을 탕진했고 생계난을 겪게 됐다.

B씨는 다시 아버지에게 손을 벌렸지만 아버지는 이를 거절했고 아들에게 잔소리를 자주 했다.

1억원의 빚을 지게 된 B씨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감을 점차 키워나갔고 범행을 계획했다.

범행 이후 B씨는 농장의 폐쇄회로(CC)TV를 제거했고 숨을 헐떡이는 아버지를 방치한 채 도주했다.

법원은 B씨에게 징역 18년을 확정했다.
출처 픽사베이출처 픽사베이최근에는 자녀를 살해하는 비속살해 범죄도 많이 발생하는 추세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23년 전국에서 자녀를 살해하거나 살해하려 한 부모는 56명이다. 이 중 43명의 자녀가 실제로 목숨을 잃었다.

자녀를 살해한 부모 중 상당수는 출산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 양육에 부담을 느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2022년 경북 경산의 한 원룸에서 혼자 아이를 출산한 20대 C씨는 아이를 낳자마자 변기에 빠트린 뒤 방치했다. 이를 알게 된 C씨의 친구가 뒤늦게 아이를 구조했지만 아이는 결국 숨졌다.

C씨는 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을 확정 받았다.

지난 2023년 출산한 지 약 2주 만에 두꺼운 이불을 덮어 아이를 숨지게 한 20대 친모 역시 20세에 남자친구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임신하게 되자 양육할 자신이 없다고 생각하며 범행을 저질렀다. 범행의 대가로 징역 3년을 확정 받았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장은 "피해를 입은 아이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어렵고 이미 사망한 경우 말을 할 수 없다. 그러다보니 판결이 가해자의 변명에 의존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스마트이미지 제공스마트이미지 제공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자녀를 살해한 범행을 너무 가볍게 처벌한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자녀를 살해한 경우 존속살해보다 형량이 낮은 것이 보통이다. 형법은 존속살해죄를 따로 두고 일반 살인보다 엄하게 처벌하도록 규정한다. 하지만 비속살해죄는 따로 없기 때문에 살인 또는 아동학대치사 혐의가 적용된다.

또 비속살해의 경우 여러 감경요소가 적용되는 사례가 많다.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 받았던 C씨는 항소심에서 징역 2년으로 감형됐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20세의 어린 나이에 미혼의 몸으로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됐고 아기의 아버지가 누군지도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선뜻 아기를 출산해 양육하겠다고 결심하기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여 그 범행 경위에 일부나마 참작할 사정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또 "피고인이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영아살해를 의도했다고 보기에 무리가 있고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 어려운 경제적 여건 등으로 불안정한 심리상태에서 그릇된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감형 사유를 설명했다.

반면 존속살해는 죄명이 따로 있을뿐 아니라 계획적으로 저지르거나 반인륜적인 사연인 경우가 많아 형량이 더 높게 나오는 것이 보통이다.

공 대표는 "아이는 부모가 돌보고 보살펴야 하는 대상이고, 아이에게 유일하게 의지할 대상이 부모뿐이다. 보살핌을 줘야 할 아이를 학대하거나 살해한 경우 존속살해보다 더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비속살해 범죄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찰도 이런 문제를 인식한 듯 2023년 처음으로 자녀살해 범죄 통계 집계를 시작했다.

아무런 선택권도 없이 세상의 빛을 보자마자 숨지는 영아들, 부모의 극단적 선택으로 인해 죽음을 거부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희생양 삼는 비속살해 범행을 막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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