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낼 수 있어 감격" 대구 동구 일일 다방서 바리스타 된 치매 어르신

"해낼 수 있어 감격" 대구 동구 일일 다방서 바리스타 된 치매 어르신

류연정 기자류연정 기자"어서오세요. 저희 업소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머리가 희끗한 강대균(77)씨가 힘차게 외치면 가슴에 '바리스타' 명찰을 단 여성 어르신들의 손은 긴장한 듯, 힘이 꽉 들어간다.

커피 주문이 들어오자 바리스타 역할을 맡은 권일선(77)씨는 저울에 영점을 맞추고 천천히 드립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권씨가 공들여 만든 커피는 대기 중이던 또다른 어르신의 손에 넘겨져 손님에게 서빙됐다.

22일 오후 2시. 대구 동구 효목동 기억쉼터에서 일일 카페인 '반짝 기억다방'이 열렸다. 강씨와 권씨 등 이 곳에서 하루 동안 다방을 운영한 어르신 5명은 모두 치매 진단을 받은 이들이다.

강씨는 2018년, 권씨는 2022년 경증 치매 진단을 받았다.

대구 동구는 경증 치매 진단을 받은 지역 어르신들의 사회 교류를 늘리고 인지능력 향상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반짝 기억다방' 행사를 마련했다. 지난해 10월 첫 운영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고 대구 지자체 중에서는 동구가 최초로 시도한 행사다.

주문부터 음료 제조, 서빙까지 모두 경증 치매 어르신들이 담당한다. 다만 기억쉼터 직원 등이 어르신들을 도왔다. 음료는 무료로 제공되며 동구가 예산을 지원했다.

류연정 기자류연정 기자서툰 어르신들을 배려하기 위해 지켜야 하는 수칙도 있다.

"반짝 기억다방에서는 주문한 것과 다른 것이 나올 수도, 조금 늦게 나올 수도 있지만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것을 기본 에티켓으로 합니다"

실제로 드립 커피를 담당하는 권씨는 주문이 몰아치자 이따금씩 정량만큼 물을 맞추지 못해 실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권씨는 도우미의 지원을 받으며 천천히 실수를 만회했다.

권씨는 "처음 해보는 일이다보니 어렵긴 하지만 정말 재미있다. 내가 해낼 수 있다는 것이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이날 기억다방을 찾은 손님 김선희(54)씨는 분주한 어르신들의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김씨는 1년 전 치매 진단을 받은 어머니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씨의 어머니는 건강 악화로 현재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했다.

김씨는 "치매 진단을 받은 어르신들이 사회와 교류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의미있다고 생각하고 이런 기회가 더 확대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치매 환자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이 많은데, 그런 시선 때문에 어머니의 검사가 늦어진 면도 있는 것 같다. 치매 환자들에겐 기억쉼터 등 관련 기관의 도움을 최대한 일찍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날 기억다방에는 50여명의 주민들이 방문했다.  윤석준 동구청장도 직접 이 곳을 찾아 "치매는 우리 사회의 몫이다. 7천여명의 치매 어르신이 사회 일원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동구는 조기검진, 치매 환자 등록, 치매 인식 개선 사업, 치매 환자 가족 프로그램 등 다양한 치매 관련 서비스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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